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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선도 도단에 대한 질의답변
글쓴이     현일자 임상수 작성일 2019.04.07 16:48:50 조회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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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인 님들께 드리는 글*임상수 작성자덕산|작성시간04.12.26|조회수111 목록댓글 0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국선도인 님들께 드리는 글.......................................! ..................................................(&順天者 님께!) ................................................................*현일자 임상수 내가 순천자? 님께 이 글을 쓰려고 생각한 것은 순천자 님께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켜서 보내주신 소중한 의향이라고 생각되어 이를 고맙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지금까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내가 한 그룹의 총수의 투신자살을 애도하는 의미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서 나의 지난 과거 국선도 역사의 아픈 발자국을 들추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국선도의 발전에 저해되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국선도의 이념이나 구활창생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국선도 수련인 무두에게 드리는 글로 나의 뜻을 대신 전하고자 합니다. 나 또한 근본적인 생각에서는 순천자님의 반론에 동의하고 있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정치적인 것이나 남북한의 민족적인 일에 연관지으려는 것이 아니고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에, 그것도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자살해야 될만한 근거가 전혀 없이 무단히 갑작스런 충동에 의해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한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이 나라에서 얼마나 진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의 죽음이 아무런 의혹이 없는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단순자살이라고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그가 만약에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반민족적 반국가적 범법 행위를 한 중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제 삼자가 그를 투신 자살하도록 한 심리적 원인을 제공했다면 그의 죽음의 책임은 당연히 그 제삼자가 지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오래 전에 KAL기를 폭파하여 수많은 승객을 죽게 한 마유미?도 자살하지 못하게 자갈을 물려서 데려와 그 죄를 법정에서 가렸고 대구에서 수백 명이 정말로 억울하게 불타죽게 한 그런 흉악한 죄인도 정신적 상태 등을 고려해서 검사의 사형 구형을 재판부는 무기징역으로 감형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나라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그룹의 총수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것도 사옥에서 투신자살을 했다고 그의 죽음의 책임을 스스로의 순간적인 자살 충동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을가요?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어떤 죄가 있다 없다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 바랍니다. 그가 살았을 때 한 행적에 대해서 나는 크게 관심 둔 바도 없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그것은 일상적인 사건 중의 한 사건으로 이해했었기 때문에 더구나 나는 TV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정 아무개라는 현대그룹 총수가 자살했더라"는 정도의 인식 밖에는 갖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누군가가 메일로 위의 사진들을 동영상화 해서 위의 시를 애달프게 낭송한 메일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그의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가 무언가 이애 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그 메일 내용을 내 홈페이지 '나눔의 장'에 옮겨 싣고 무언가 석연치 않은 그의 죽음에 대해 개인적으로 애도를 표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외래 강의를 나갔다가 신문 등 언론의 기사를 보면서 뭔가 억울한 죽음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 억울함이 지금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나의 恨과도 같이 그때 내가 당한 것처럼 지금도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는 판단과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20년이 남도록 풀리지 않는 나의 문제와 같이 인권이 짓밟힌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문제는 또한 국선도의 문제로서 언젠가는 국선도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판단했기 때문에 국선도의 홈페이지에 그대로 옮겨 싣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한참 국선도가 둘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을 때 청와대에 올렸던 내용 일부를 당시 국선도 카페에 올려 국선도인들이 무엇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지 묻고 싶었는데 지난 과거에 나의 질의에 답하는 진지한 사범들을 보지 못했고 오히려 비아냥거리기만 했던 사실을 나는 기억하기 때문에.............. 이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는데 많은 갈등과 번민을 한 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것입니다. 지금도 지난날 국선도가 어려울 때 (*초창기와 1980년도) 국선도를 스스로 등지고 국선도를 떠나갔던 이들이 지금에 와서 국선도의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하여 국선도를 기묘하게 사단화 시키고 있는 즈음에 지난날 내가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지켜왔던 그렇게 소중한 국선도가 현대화와 국제화라는 미명아래 한 개인의 전유물로 전락하여 국선도의 원칙이 훼손되어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고 다시 태어나는 산통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지금 국선도가 위아래가 없이 서로 반목하는 무질서 속에서 국선도인들이 과거에 이 국선도가 어떻게 해서 지켜 내려온 것이라는 단편적인 내용이라도.............. 이해를 구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내가 이렇게라도 국선도에 이름이라도 남아 있을 때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훌륭하신 사범 님들에게 다시 조소를 당할 것을 각오하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 *순천자? 님께서는 한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사실이 그렇게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 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다는 일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것도 사회적으로나 명예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충족한 그런 한 사람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의 목숨을 그것도....................... 자신의 분신이나 다를 것이 없는 사옥에서 투신자살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로 보는 수사기관의 해명이 나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 박종철 군이 고문에 죽었을 때 수사 당국은 고문 사실을 은폐하고 "퍽!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주장처럼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결코 단순한 투신 자살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인권의 사각 지대가 안타깝게도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 *나는 1980년 5월 17일 경에 (...광주 사건과 비슷한 시기로 기억하지만...) 대학 졸업 때 찍은 사진 가져다주려고 본원에 들렸다가 아는 회원 몇 명이 집에 안가고 있기에 물어보니 저녁에 제사가 있어서 참여하려고 한다기에 - 그땐 일년에 몇 번 "人類源歸神位" 께 대한 제사를 사부 님 주관 하에 지냈기 때문에 - 평소와 같이 그냥 온 김에 참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사를 안 지내니 그냥 집으로 돌아들 가라고 해서 본원에서 나와서 집(당시 은평 도장)으로 가려고 택시를 잡으면서 비원 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 때 갑자기 건장한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더니 골목으로 데리고 가서 이유도 말하지 않고 "기관사람?"이라고 하면서 소지품 압수하고 허리띠 풀게 하고 신발 벗게 하고 그리고는 데리고 간 곳이 종로 파출소였습니다. 그때부터 "머리 숙여!" 등 고함 소리와 함께 위협을 주고...... 아무리 계엄시대라고 하지만 어떻게 되는 내막을 알 수 없어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중죄인을 다루는 분위기였고 겨우 용기 내서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바로 총살 아니면 그대로 구두 발로 거의 실신하도록 얻어맞아야 하는 일분 후의 상황을 예측 할 수 없는 혼돈 지경에서 암담하게 머리 박고 숨죽이고 두어 시간이 지나니 큰 차가 와서는 국선도 본원에서 사부님을 비롯한 몇 명과 함께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는데 거기가 중앙정보부 조사실 이었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밤새워 조사를 받는데 죄의 명목이 나는 듣는 것도 처음인 "국가전복을 위한 내란 예비음모를 하였고 또한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국선도인 십 여명이 어떻게 한 나라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지금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길거리에서 정보부원들에 의해서 무단 납치 되어서 군 보안사에 넘겨진 이유가 "국가전복을 위한 내란 예비음모를 하였고 또한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한 국가가 어린애 장난하는 곳도 아닌데 국선도인 십 여명이 한 국가를 전복하려고 기도를 했으며 그것은 이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의 소행이라는 참말로 어처구니 없는 죄목으로 불법 납치되어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그들은 자백을 받기 위해서 가혹 행위를 무참하게 자행한 그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어떠 하였기에 20년이 지나도록 누구에게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자금까지 살았겠습니까? 사부님은 결국 산으로 다시 재 입산하시고 남아 있는 사람들조차도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서 국선도의 본지를 흐리고 있는 실정을 지켜보는 나의 심정은 어떠리라고 짐작을 하실 수 있는지요. 국선도가 무운 사조님 말씀처럼 변질되지 않고 잘 이어져서 구활창생의 도로서 이 민족에게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과거의 아픔이라는 것은 시회적으로 겪어야 될 요식 행위에 불과 할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국선도가 어처구니없이 둘로 갈라져 대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왜 목숨을 걸고라도 국선도는 지켜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음모의 내용을 들은 것도 붙잡혀가서 그들에 의해서 인식된 것이지 사전에는 전혀 알고 있지 않은 생소한 것이려니와 그 당시에도 정치라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순박한 구도적인 종교인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물정을 잘 몰라서인지 그들이 죄목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이해나 상상도 할 수 없을 뿐더러 그 사람들이 묻는 말에 대해서도 그 뜻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니 자연히 악질이라고 더 심한 대접을 받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부님 다음으로는 내가 당시 직책이 사범이라고 알려지므로 해서 그들에게 당해야 하는 나의 곤혹은 더할 나위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국선도 본원에 들어갔다가 밤에 제사지낸다고 해서 몇몇이 같이 있다가 사정에 의해서 못 지내게 되었으니 집으로 가라고 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거리에서 기관원에 의해서 무단히 납치되어 중앙정보부 조사실로 붙잡혀 갔던 것입니다. 당시 정보부원들이 밤새워 조사하고는 다음 날 어디론가 창문을 가리고 데리고 가서는 어느 회사 같은 음침한 회벽으로 둘러친 건물로 끌고가서 그 회벽에 세워 놓고는 사진을 한 장씩 찍는데 어떻게 되어 가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나는 지금 막 사형 당하기 전에 마지막 찍히는 사진처럼 음흉스런 회벽에 세워 놓고는 죽음의 그림자에 가려진 그런 사진 한 장씩을 찍히고 다시 취조실로 끌려갔습니다.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그 들의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해야 되는지 사건의 내용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나로서는 그때의 상황을 파악 할 수가 없는 혼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운명에 맞기는 것 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각자 방 하나에 들어가 앉게 하면서 일단 이유 없이 실신할 정도로 가혹 행위를 해서 내가 살아있다는 의식을 못 갖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를 죽여 놓고는 책상에 머리 박고 있도록 하고 조금 있다가 와서는 옷을 갈아 입으라고 하면서 죄수복 비슷한 것을 가져다 주기에 막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느닫없이 '여기가 니네 안방이냐?'고 고함치면서 느닷없이 두들겨 패어 또 거의 실신하도록 해 놓고는 '네가 여기에 왜 잡혀 왔나 아냐?'고 하면서 "너는 지금부터 간첩이다."고 하면서 또 머리 박고 엎드려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취조실에 불려가 취조 받고 나와서는 또 아무 이유 없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구타를 자행하고 "도대체 왜 폭행을 하느냐?"고 하니까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덜 차렸다.'고 하며 다시 더 죽도록 얻어맞고는 '너는 간첩이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너를 그대로 총살시킬 수도있다. 아니면 삼팔선 철조망에 세워 놓고 총으로 갈겨 죽여서는 이북으로 넘어 갈려고 해서 간첩을 잡았다고 사진 찍어 신문에 낸다.'는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상상 할 수도 없는 말로서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을 주면서 며칠 동안을 잠도 안 재우고 취조하고는 낮과 밤이 정지되어 있고 시간과 공간이 닫혀 있는 듯한 음험하고 소름끼치는 군 수사대 보안사인 서빙고의 지하 감옥에 들어가 갇혀 살았습니다. (*당시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옆방이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고문의 비병소리......!!!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해 보지 않으신 순천자 님은 그런 상황을 지금 상상 할 수 있나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풀어주지 않고 지하 감옥에 가두고는 이유 없이 수시로 와서 가혹 행위를 하는 것이 상례처럼 치러졌기 때문에 당시에 내가 살아서 거기를 나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좌절과 절망에 지친 혼돈 속에서 언제 어느 때쯤 저들의 생각대로 내가 죽을 것인가 만을 생각하며 임종을 선고받은 환자처럼 초점을 잃고 살아 있어야 하는 넋나간 삶을 10여일 간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죽고사는 것은 스스로 자포자기 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곳의 일에 대해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야망의 세월?"이라는 연속극을 방영 할 때 탈랜트 최수종이 군부대에게 붙잡혀 지하 감방에서 겪는 장면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잡혀와서 10여 일이 지난 후에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호명하기에 이제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고 일제시대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어이없이 말 한마디 못하고 죽는구나! 하면서 끌려가니 왠 일인지 조금은 편하게 대하기에 죽이기 전에 인심쓰는 줄 알았습니다. 소지품을 주고는 어느 차에 타라기에 타니 문을 가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어딘지 한참을 가서는 길 한가운데 내려놓으면서 '네가 계속 살고 싶으면 지금의 이 일에 대해서는 평생 말하지 말라!'고 하고는 차는 어디론지 가버렸습니다. 살려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20년이 넘도록 부모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그러한 사실들을 입밖에 내지 못하고 혼자만이 간직한 채 가혹 행위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 내가 이 글로 인해서 언제 어느 때 나도 모르게 어떤 사람들에게 붙잡혀 어떤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서 이 글을 씁니다. *그날 비가 주룩 주룩 오는데 우산도 없이 그 빌르 다 맞으며 알 수 없는 길거리 한 복판에서 한 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 나왔다는 것이 정말로 꿈만 같아서 아무 생각이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내가 사범으로 있던 국선도 은평 도장에를 찾아 갔더니 모두가 외면하고는 쳐다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땐 서울에 도장이 본원, 남영동, 은평 등 이렇게 3 군데 밖에 없었을 때로 기억 됩니다.) '저들도 나 때문에 보안대 군인들에게 얼마나 시달렸겠는가'고 생각하고는 이제 여기서 세상인연이 다했다는 생각이 되어 산으로 들어 갈려고 짐을 정리하여 차에 실코서 아는 집에다 가져다 놓고는 사모님께 인사라도 드리려고 전화를 하니 '본원이 지금 지도자가 아무도 없으니 본원을 지켜달라!"는 애절하신 말씀에 나도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은 격한 심정을 어쩌지 못하고 발 길을 본원으로 돌린 것이 사부 님의 문제가 다 해결되어 1982년 9월에 대구로 내려 올 때까지 내가 본원에서 있게 된 상황입니다. 국선도가 1967년 세상에 퍼진 이래 가장 어려운 궁지에 처했을 때 그렇게 사부님께 충성실하던 지도자들조차도 일이 터지고 나니 막상 제살 길로 다 떠나가 버리고 사부님 자리조차 텅 비어 있는 적막한 본원을 일으키기 위해서 나름대로는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 당시의 암울했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발편으로 한 것이 매주 토요일에 "仙道學 原典"을 가지고 강독하면서 강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대구에서 선도에 대해서 연구하는 모임인 "선도문화연구회"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당시 그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은 말로 표현 할 수도 없었는데도 사모님으로부터 시작해서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나까지 힘들게 할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도 직접은 사모님께는 그와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봄에 사건이 난지 만 20년이 되어서야 나는 결심을 하고 '대통령에게 타원서'를 냈고 이 탄원서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서 다시'민주화보상심의회'에 보내져 민주화 운동을 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하여 나는 이를 다시 '서울 행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하여 제소했으나 변호사도 없이 국가 기관과 일개 시민이 법정싸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를 뼈아프게 느끼게 하는 기각 처분을 받고 다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를 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난 것을 가지고 인권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이유로 또다시 기각을 당한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선도인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나와같이 분개하거나 위로 한마디 한 사실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를 내쫓았던 과거 은평 도장의 원장님이 후두암 수술로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자신이 과거에 오해를 했다고 미안해 하시면서 대구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서 담당 형사와 공무원 앞에서 20년 전의 사실에 대해서 자신이 겪은 옛날 당시의 일들을 돌이켜 소상히 '인후보증'을 서 주셨을 뿐이고, 다른 국선도 관계자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는 동안 잿밥에 눈이 멀어 파벌을 조장하여 국선도를 쪼개서 이권이나 챙길 궁리나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고 의아 스러울 뿐입니다. 물론 그러한 판 가름에 초연하게 국선도의 진의를 지키고 법답게 수련하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보이지 않는 정신에 의해서 지금까지도 국선도가 진면목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국선도의 허울 속에서 시비를 떠나지 못하고 산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러한 보이지 않는 힘들이 앞으로도 국선도를 계속 지켜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 *이제 나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국가를 상대로 한 정식 재판인데 이것은 나 하나의 ㅡ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국선도 자체의 문제인데도 나 혼자만이 '법적으로 국가로부터 진실한 사과와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 아무 때고 죽인다고 협박하고 가혹 행위를 수시로 밥먹듯이 했던 초법적인 인권유린에 대한 응분의 배상을 하라!'는 재판을 과연 요구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인과로 돌리고 그냥 없었던 일로 치고 살면 속 편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 동안 혹시나 그 때 같이 연루되어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수소문했으나 당시 사부님을 측근에서 모시며 사건에 연루시킨 장본인인 차장량씨는 거기서 고생하고 나와서 수유리에 국선도 도장을 운영하다가 가정 문제로 문닫고 나가서 모악산 금산사 쪽의 어느 골짜기에서 증산도? 계통의 수도를 하다가 이승헌이라는 사람을 만나 서로 의기가 투합되어 이승헌의 영적 능력을 이용해서 처음에는 증산도식의 ' 영통, 신통, 도통, 법통 등의 술법을 전수해주는 단체'로 백회를 열어 기를 넣어주는 신흥 수련단체로 행사하다가 차장량씨가 '단학'이라는 책을 써서 그것을 수련 교재로 삼게 되면서 "단학선원"으로 처음 정착을 하게 되고 여기서 차장량씨는 이승헌과의 알력에 밀려나와 혼자 풍류도를 만들어 도인 행세를 하다가 종로에서 국회의원도 내왔다가 떨어지고 다시 전주의 모악산에서 도?를 닦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수에서 모 대통령과도 한때 같이 재야 정치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그 후 얼마 못 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타 당시에 젊었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대부분이 저 세상으로 가지 않았으면 종적을 찾을 길 없으니 이 모두가 그 사건의 후유증이 낳은 결과로 이 또한 슬픈 일로서 나 혼자 살아 남아서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이것이 왈 당시의 "국선도 조화정 사건"인데 지금에 와서 내가 '국선도의 율려몽'에 나오는 조화정의 자료나 사상적 근원을 다시 살펴보면 "백천국의 조화정"은 수 천년 전부터 우리민족이 국선도 수련을 통한 도덕적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우리민족의 뿌리 깊은 의식 속에 가지고 내려오는 민족 웅비의 시온이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사건의 전말을 명백하게 밝히고 그 정신을 본받을 것은 본 받아서 이 땅에 씨를 부릴 수 있는 터전을 마련 할 수 있기를 기대 하지만 이것 또한 허망한 꿈이겠지요. 지금가지의 이러한 사실들은 내가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내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형제들도 2000년이 지난 후에 제가 처음으로 20년이나 숨겼다가 그런 일이 있어서 그 동안 여러 가지 힘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법사 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후에야 제 입장이나 처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얘기를 한 상태입니다. 그것이 사모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직까지 사모님께는 말씀 드리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모님은 나 아니라도 사부 님을 뒷바라지 하시느라고 사부 님이 안계신 공백을 메우시기 위해서 무던히 힘든 생활을 하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또다시 힘든 과거를 회상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힘든 생활을 겪으시고 난 후에 사부 님이 자유로운 몸으로 활동하게 된 관계로 나는 대구의 영남대학교에서 초청이 있어서 내려 왔다가 지금까지 대구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 정말로 국선도가 가장 힘들었을 때 ...1980년 봄부터 1982년 여름까지 지금 세계 국선도 연맹에서 국선도의 장래를 위해서 비표를 가지고 때를 기다렸다고 하신 세분 선사님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국선도를 위해서 시절 인연을 기다리셨다는 것인지.....? 그것이 결국은 국선도를 도동강이로 갈라 먹기 위한 치밀한 음모였던 것이 아닌가요. ...........그 여려운 시기에 사부 님께 안부전화 한 통 없이 의절하고 사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부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당신들을 모셔온 진영 법사를 몰아내고 새로운 국선도의 진법을 전수하는 양하여 순박한 사범들을 현혹시키고 다시 사모님의 재산을 강탈하다시피 하여 사범들에게 공노로 나누어주는 지비를 베푸셨고 당신들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법사들을 사범들을 시켜 협박하게 하는 그런 와중에서 무도한 그들을 이용해서 국선도의 세를 통채로 장악한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서도 법사들에게 협박을 해서 도종사를 국선도의 유일 한 법통 승계자로 인정하라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자행하면서도 어떻게 국선도의 법통을 이어 국선도를 위하는 행위라는 변명을 아무런 양심적 가책도 없이 입에 담아 낼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용기가 부럽습니다. 이런 일도 이미 지나간 일이니 다시 거론 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연루되어 참혹한 세상의 경험을 하게 되었던 왈 "국선도 조화정"사건도 이 시점에서 다시 역사적 의미로 재조명 해 보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제는 숨겨야 할 아무 것도 없다고 봅니다. 21세기가 넘어선 이제는 떳떳하게 그 사실들을 사실대로 소상히 밝히고 국선도와 사부님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새로운 입장에서 재조명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 당시에 사부님이 연루된 그 조화정(*참조: 율려몽)에 대해서 전혀 관계도 하지 않았거니와 관심도 없었지만................... 이제는 그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사부 님의 세상에 대한 구제 사상과 그 실천 운동사로서의 국선도를 다 털어놓고 얘기해야 합니다. 이제는 숨기고 쉬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군부의 독제 정권이 일으킨 인권유린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의 보상을 받았는데 왜 국선도 사건은 아직도 "국가전복을 위한 예비음모죄"를 뒤집어 쓰고 있어야 합니까? 지금까지 '조화정' 사건은 국선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부님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어 왔고 거기에다 내가 재수 없게 걸려들어 피해를 본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화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내가 특별한 사유 없이 당시 국선도 사범이라는 이유로 국가 기관에 의해서 그렇게 가혹 행위를 당했다면 그것은 곧 국선도가 군부의 독재 권력에 의해 당한 국선도의 법란이라는 인식을 해야 할 것으로 보며 국선도 지도자가 합당한 이유 없이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은 바로 국선도가 압박 당한 것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사범들이 법사 한 분이라도 협박한 사실이 있다면 비록 나를 직접 협박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선도의 법사라는 조직체계를 협박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이 자리서 같은 법사로서 재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국가가 국선도인 모두를 테러하지는 아니 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련 연관이 없는 국선도 사범을 무단히 테러 했다는 것은 국선도가 무력으로 핍박당하는 힘든 역사 속에서 살아 왔다는 국선도의 역사인식을 분명히 하고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0년 이상을 아무에게도 말 않고 살아 온 내가 여기서 그 사건을 다시 재론 하는 것은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개인적인 한풀이가 아니라 국선도의 역사 인식을 바로하여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의도입니다. 기독교도들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된 역사 인식을 통해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소명 의식을 갖듯이 국선도도 지나온 역사적 발자취를 바르게 인식하여 국선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소명 의식을 갖고 국선도가 나아갈 바를 설정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선도인 어떤 누구에게도 동정 받거나 이해 받기를 구걸이나 하고자 하는 그런 정도의 정신적 궁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괜한 선입관으로 사실 인식에 대한 오도를 조장하지 않기를 바라며 과거 없는 오늘이 없는 것이고 선행자가 없는 후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선도가 지나온 역사나 선진들의 존재가 비록 갈등이 점철되어 왔더고 하더라도 모든 역사는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국선도의 역사 인식을 바르게 하는 양식 있는 후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나 개인의 한풀이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의 국선도인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역사적 짐의 무게라고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삶의 길'에도 "백천국"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또한 사부님께서 지금은 재 입산하시고 안 계시지만 "구활창생"이라는 선도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부님의 구활창생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국민적 자긍심을 상실한 오늘에 되살려 국선도가 사회에 기여하는 기본 정신으로 삼아서 국선도가 인류를 구원하는 새로운 비젼으로 제시되고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국선도인(*순천자?) 님! 얘기가 쓸데 없이 길어졌네요. 이미 순천자 님이 다 숙지하고 있는 사실들을 부언했다면 사과 드리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는 추호도 정치적인 의도로 고 정몽헌 회장을 추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가 어떤 충동에 못이겨 자살해 죽었으리라고는 심리적으로 공감 할 수 없으며 그를 죽게 한 것은 그의 자존심이나 신뢰에 대한 추락을 스스로 견디지 못 했으리라고 공감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초법적인 권력 기관인 국가에 의해서 테러를 당했듯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검찰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한 몫을 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고 정몽헌이 회장으로 있는 현대 아산이 북한에게 무엇을 어떻게 주어서 어떠한 잘 못을 했는지는 검찰의 수사에서 밝혀지리라 믿어지기 때문에 내가 관심 갖아야 할 처지나 내용이 아니며 나는 한 인간의 죽음이 잘못 매도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사회의 모순에 입각하여 정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가 현행범이라 할지라도 수사과정에서 그에게 감당 못할 언행을 수사관들이 했다면 여자는 사랑에 배신이 있다면 목숨을 버리지만 남자라는 특성은 살아가던 자존심이나 명예, 지위 등 기가 꺽이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 할 있다는 심리 말입니다. 이러한 남성 심리학적 측면에서 내가 생각해 볼 때에는 의지 보다는 남(*검사)으로 받았던 굴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차라리 남자답게 죽자!"라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리라고 봅니다. *氣가 꺽인 남자! 의지를 잃은 남자! 가정에서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남자! 이 들은 남자의 특성상 거의가 삶을 포기 한 노숙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남자에게는 가장이나 사회로부터 인정 받는데서 세상에 나가서 온 힘을 기울여 노동을 하고 기업을 운영하는데 온 힘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氣가 꺽이고 나면 사회적 진출에 대한 좌절감이 앞서서 더 이상의 힘을 쓰지 못하고 차라리 삶을 포기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가 꺽인 남자는 자연히 자존심상 가정에도 못 있고 저절로 노숙자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 상고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분명히 말하지만 사회적 명예와 나름대로의 최고의 입지를 가진 사람이 어느 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모멸을 받았다는 것은 그에게는 감당 할 수 없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의리 하나를 위해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이 남자의 특성이고 보면 이 사건은 오늘 날의 사회적 모순이 가져다 준 암묵적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 그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떠한 죄과가 있는지는 검찰에서 조사가 나오겠지만 그가 죽은 사실이 오비이락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와같이 국가공권력으로부터의 초법적인 가혹행위를 아무 이유 없이 한 번쯤 당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넉두리가 조금은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에서 국선도의 역사 인식을 다시 새롭게 하고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 그래서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왜 법사님들만 누구보다도 더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법사님들을 더이상 신뢰하거나 존경 할만한 사유가 없어서 다른데서 국선도의 유일한 법통 승계자를 찾았나요? 법사들이 못났다면 왜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그것은 사범 님들이 판단 할 문제가 아니라 법사를 임명하신 사부 님이 책임져야 하는 하는 국선도의 존재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가 아닌가요. *이런 원론적인 존재나 문제를 무시하고 잘난 사람(스승?)찾아 모시고 섬기면서 국선도를 어디로 끌고 가고 싶습니까? 그래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존경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국선도가 왜 - 그런 세속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다시 비판받고 분열되어야 합니까? 사범님들이나 수사님들이 법사님들 보다 더 훌륭해지시면 안 됩니까? 훌륭한 사범님들이 못난 법사님들 모시는게 부담스럽고 창피해서 그 존재를 부정하고 싶으신가요? 거리에서 청소부나 하는 못난 아버지라고 그냥 이웃집 아저씨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잘난 사범님들이 못난 법사라도 함께 하면서 국선도를 이끌고 나가면 안되는이유가 무엇이기에 국선도에 있지도 않은 법통을 강요 하면서까지 두패로 가르는 것이 과연 국선도의 사범으로서 떳떳하게 행한 일이라고 자부 할 수 있는 것인지 훌륭한 사범 님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 비경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사부님?의 도맥을 잇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명분이나 기치를 멋대로 내걸 수가 있는 것인지요. 나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나 상상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사람을 따르지 말고 도법을 따름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사람을 가지고 시비하지 말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나 주장들이 과연 국선도법에 합당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훗날에도 국선도가 살아있을 것입니다. *국선도의 미래는 우리가 다함께 더불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못난 법사나 사범도 다같이 어울려 서로가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국선도의 진솔한 가풍을 소망합니다. 법사 님들은 모두가 사범 님들이나 수사 님들이 현재의 법사 님들 보다 더 훌륭해서 정말로 이 사회와 세계의 역사 속에 국선도를 길이 선양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 . . 더이상 법사 님들을 가지고 걸고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법사님들 가운데에는 사부님 대신 사이비 교주같은 명예에 자존심을 걸만큼 호기를 부릴만한 뱃심있는 법사님이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군요. 괜히 사범 님들의 잣대로 법사님들의 인격을 가지고 도마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하는 망나니 짓은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청산 선사님을 우상화하여 섬기는 것이 청산 선사님을 위하는 일이 아니려니와 국선도를 위하는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국선도가 사범 님들의 원력으로 세상에 바르게 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은 모든 국선도 지도자들이 경제적으로 한 달 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힘겨운 여건하에 국선도를 이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니만큼 서로가 힘이 되도록 격려하면서 좀더 사려깊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국선도인 다운 행동을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 *벌써 새벽 다섯 시가 넘어 아침 수련 준비를 해야겠군요. 내가 아직 말하지 않아야 할 부분도 말했으리라고 보는데 이것은 시각의 차이로 우리가 한 번쯤은 되짚어 보아야 할 국선도의 역사에 뚜렷이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이를 바탕으로 국선도가 올바른 正體性을 찾아 국선도의 새로운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의 구실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3. 8. 12. 아침 6시에 현일자 임 상 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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